아니메피스 15주년

by 우니 posted Mar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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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올해도 어김없이 3월 6일이 도래하야 이로써 아니메피스는 15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 3월 6일 문을 연 우니동(아니메피스)가 어언 2016년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회원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운영 중단 상태가 길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잊지 않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회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벌써 15주년이 되다보니 제법 애틋한 경우도 생깁니다.

학생 시절 함께 했던 회원들이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꽤나 많아졌습니다. 저부터도 그 감성 터진다는 중2 시절에 이곳을 만들어 지금은 20대 끝자락에 서 있으니 과연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하겠습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달려온만큼 운영 중단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2008년 9월 잠정적 운영 중지를 선언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니메피스는 벌써 8년째 운영적인 휴면 상태에 있습니다. 조만간의 복귀 가능성도 사실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기어코 10년째를 찍고야 말 셈이냐는 비난에 이젠 궁색한 핑계조차도 떠오르지 않는 지경이네요.

 

외람되오나 아니메피스는 유튜브나 페이스북보다도 오래된 사이트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3대 포털이라는 네이버/다음/네이트와 비교해도 고작 몇 년 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우니동(아니메피스)의 탄생 시기는 헌터X헌터가 처음 연재를 시작한 시기와 엇비슷하다고 표현하면 놀라실까요? ㅎㅎ

이렇게 1주년 1주년이 쌓일 때마다 꾸준히 연차는 늘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의 웹 환경에 개인이 운영하는 중소형 사이트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홈페이지(사이트)는 사실상 상업 사이트 또는 대형 사이트 뿐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중소형 사이트는 사실상 사라져 버린지 오래 입니다. 그러나 과거 이 나라에는 개인 홈페이지 열풍이 크게 불어닥친 적도 분명 있었습니다.

아니메피스는 그 뜨겁고도 치열했던 한국 웹 생태계의 숨가쁜 변천과 함께 해 왔습니다. 매번 1주년 인사를 드릴 때마다 송구할 정도로 짧은 인삿말로 시작해 어김없이 운영 중단에 대한 사과 말씀으로 끝을 냈지만, 이번 15주년은 이 자리를 빌어 과거 그 치열했던 개인 홈페이지 열풍과, 그리고 그 시대적 열풍의 일원으로써 아니메피스가 담담히 지켜봐 온 한국 웹 생태계의 변천 과정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재미있는 읽을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 반영된 스토리이므로 100% 정확하다고 단정내릴 순 없지만 큰 흐름을 읽어내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1. 초기 한국 웹 생태계

(저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하이텔/나우누리 시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응답하라 1988/1994 시대가 지나고 이후 한국 웹에는 최초로 포털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오늘날과 유사한 웹 생태계의 초기 틀이 구축 되었습니다.

학자들은 한국 웹 생태계 역사를 어떻게 구분할런지 몰라도, 저는 한국 웹의 역사를 네이버나 다음같은 '포털 사이트'의 등장 전/후로 나누고 있습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포털의 등장 이전은 소위 말하는 하이텔/나우누리 시절,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응답하라 1988/1994 시절로서, 이 때는 제가 초등학생 시기였기 때문에 저도 이 시절의 웹 환경은 경험해 보지 못했으므로 어떻게 알 길이 없는 것이지요. 요즘이야 초딩들도 우습게 인터넷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초등학생에게 컴퓨터는 너무나 어려운 물건이었습니다.

게다가, 물론 하이텔/나우누리도 인터넷이라면 인터넷이겠지만 오늘날처럼 웹주소를 입력하여 아무 사이트나 자유롭게 드나들던 그런 인터넷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오늘날과 유사한 웹 생태계가 구축된 시기를 저는 포털의 등장 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2. 포탈 사이트의 등장, 그리고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의 시작

이렇게 포털이 등장했지만 제 기억으로는 이 시절만 해도 네티즌들에게 있어 포털/웹사이트는 단순히 원하는 정보를 얻어가기 위한 곳 이상/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각 포털에서는 이용자들를 끌어모으기 위해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메일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자우편'이라는 용어로써 무려 '공부'를 해가며 익혔던 개념으로 기억하는데, 요새는 초딩들도 그냥 '멜'이라고 쉽게 부르고 쓰는 기본적인 서비스가 되었지요.

이처럼 각 포탈들은 '메일'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들을 끌어 들이는데 성공했고, 그러자 다음 수순으로 이렇게 끌어모은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카페' 서비스를 선보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다음카페)

메일 서비스가 네티즌 개개인들을 뭉텅이로 끌어모은 서비스였다면, 이렇게 끌어모은 독립된 개개인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결과적으로 해당 포털에 대한 충성도와 의존도를 높인 서비스가 카페 서비스였습니다.

그리고 이 카페 서비스 이후에 등장한 서비스가 바로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였습니다. (메일 → 카페 → 개인 홈페이지)

 

 

3. 개인 홈페이지의 선풍적인 인기

이 개인 홈페이지는 사람들의 소셜 욕구를 제대로 건드려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니메피스도 이 시절 개인 홈페이지 열풍 속에서 탄생한 곳입니다)

각 포털 사이트들은 회원들에게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는 웹 용량을 부여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나도 홈페이지라는 것을 만든다'하는 으쓱한 기분을 만끽했지요.

혹시 이 시절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까요? 20대 중후반 쯤이면 아마 기억을 하실 것입니다. 너도나도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와 같은 가속소개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인기였냐면 학교 수행평가 과제물이 홈페이지 만들기였을 정도였지요.

그러나 이러한 가족 소개 홈페이지는 꾸준한 방문자를 확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이 나서 만들었지만 결국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일반인 수준에서는 곧 열기가 식어 버렸습니다.

 

 

4. 개인 홈페이지의 용도 변화 (가족 소개 홈페이지 → 특정 주제를 테마로 삼는 홈페이지)

그러나 홈페이지를 단순히 가족 소개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아닌, 특정한 주제(만화, 오락, 영화, 음악, 미술 등등등)를 잡아 개설한 경우는 많은 관심과 방문자를 끌어 모으게 되어 이는 곧 한국 웹 생태계를 다양화를 촉진시킨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 웹 생태계의 초기 시절에는 네이버나 다음같이 유명한 몇몇 포털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딱히 방문할만한 별다른 사이트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를 통해 이젠 일반인들도 쉽게 홈페이지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부터 단순한 가족 소개 홈페이지가 아닌 특정 테마를 주제로 하는 홈페이지가 개설되고 이로 인해 웹의 다양성과 저변이 크게 확장 되었습니다.

너도나도 내가 만든 홈페이지를 네이버나 다음 같은 검색 사이트에 등록하려고 등록 신청서를 접수했고, 혹 반려되면 또 재시도하기를 반복하면서 내 홈페이지 알리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로서는 더더욱 홈페이지를 만들어놔도 이를 알리고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은 검색 엔진 등록 말고는 딱히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개 수백개의 웹사이트가 검색엔진에 등록되곤 했었습니다.

우니동(아니메피스)도 당시 네이버나 다음같은 폴털 사이트에 검색 등록을 하려고 열심히 신청서를 제출하곤 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거 안했지만서도 쉽게 검색이 되지만요. (지금은 개인 홈페이지 자체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검색 사이트에 자기 개인 홈페이지를 등록하려는 사람들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각 포털에서 제공한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는 얼마 동안 대다수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가족 소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게끔 동기를 부여했지만 만들어놔도 방문자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단순 가족소개 홈페이지는 곧 사그라들고 대신 특정 테마를 주제로 삼는 홈페이지가 생겨났으며, 이것들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아 그 중 일부는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주제는 홈페이지로 만들기 딱 좋은 테마였는데, 마침 시기적으로도 당시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은 에반게리온을 필두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생겨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적 조건들이 서로 맞물려 좋은 시너지를 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나이트 세이버나 온애니타운같은 사이트가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하는 유명 사이트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지요.

게다가 이 시절은 90년대 초중반 저녁 6시경 공중파에서 틀어주던 만화영화 열풍이 어느정도 사그라들고 난 뒤라서, 그 만화영화를 보고 자랐던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개개인이 그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인터넷이었므로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개인 홈페이지의 열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당시가 역사상 한국 애니메이션이 웹사이트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절이며, 나름 순수한 열정도 있었던 시절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요즘도 모 사이트 애니메이션 게시판은 그 화력이 엄청나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찌질한 글이라는 점에서 감히 예전과 비교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아니메피스도 이 열풍 속에서 태어난 사이트였습니다. 중학교 시절 친구가 학교에 만화책을 가져 왔는데 그 중 최유기라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설정이 재밌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팬페이지를 만들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미래는 알 수가 없는 것이네요.

참고로 신입 회원 분들은 아니메피스의 별칭이 왜 '우니동'인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우니에서 우니는 운영자의 닉네임이니 그렇다고 쳐도, 끝에 붙은 '동'은 무슨 뜻인지 궁금할 수도 있는데요. 이것은 홈페이지 열풍이 불어 닥쳤던 저 시절의 관습(?)같은 것입니다. 애니메이션 홈페이지 중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사이트를 사람들은 'xx동'으로 명명하여 부르곤 했습니다. 예를들어 우니동, 피비동, 리얼동 같은 것들이 있었죠. 아니메피스를 여전히 우니동이라고도 명칭하는 것은 이 때의 관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규모가 커진 각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각 포털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 용량으로는 더 이상 방문자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이에 자신 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까지 포털에 가입시켜 확보한 홈페이지 용량까지 확보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동영상 자료 하나를 사이트에 올리기 위해서 파일을 수십개로 분할 압축을 하고 그것들을 가족/친지 명의로 끌어모은 계정에 적절히 나누어 올려야 했고, 방문객들 역시도 그 중에서 하나라도 짤리게 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좌절을 맛 봐야 했습니다.

저 역시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가족 친지의 계정까지 끌어모아 홈페이지 용량을 확보해야 했고, 또한 방문자의 입장에서는 수십개로 분할된 자료를 혹시 하나라도 짤리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내려받아 환희 또는 절망을 맛보곤 했습니다.

그 당시는 이런 갖은 고생 끝에 어렵게 어렵게 내려받은 애니메이션 1편에 감격하며 뜨겁게(?) 감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은 너무나도 손 쉽게 다운로드가 가능하고, 또는 아예 내려받지도 않은 채 스트라밍으로 즉시 감상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편해졌다면 편해졌지만... 뭐랄까요. 적당한 밀당이 사라져버린 밋밋한 연애 같다고 해야 할까요? 쉽게 얻은만큼 쉽게 잊혀지는 듯 합니다.

 

이렇듯 당시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들은 가족 친지의 계정까지 끌어모아 어떻게든 홈페이지를 꾸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는 요즘같은 광고의 개념도 생소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사이트 뿐 아니라 개인 블로그에까지 구글 애드센스 광고를 붙여 수익을 얻는 모양이지만 당시만해도 애드센스가 등장하기 전이거나 혹은 등장했어도 생소했던 시절이기에 중대형급 홈페이지 운영자들은 그야말로 오직 열정만으로 사이트를 꾸려 가야만 했습니다.

 

 

5. 블로그의 등장

이런 와중에 포털에서는 블로그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런칭하게 됩니다.

이 블로그 서비스는 비록 잠시였다고는 하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소셜 욕구를 한번 맛 본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블로그 역시 특정 주제를 잡고 운영되는 개인 홈페이지의 축소판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라이트한 일반 개인 네티즌들은 블로그에 열정을 잃게 됩니다. 홈페이지와 마찬가지로, 블로그 역시 자신의 가족 소개를 해 놓는다고 해서 방문자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죠.

 

사실 블로그도 개인 홈페이지처럼 어떤 특정 주제를 잡고 운영되야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인 홈페이지와는 차이가 있었죠.

개인 홈페이지는 아무리 좋은 주제로 운영한다 한들 네티즌들은 그런 홈페이지가 있다는 존재 자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운영자가 발품을 팔아 홍보하고 또는 검색 사이트에 등록하고 하는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그런 홈페이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애니메이션/게임 홈페이지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자료성 홈페이지였기 때문에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또는 조금만 홍보해도 방문자들이 알아서 자료를 받으러 찾아 왔으므로 계정 확보가 어려운거지 방문객 유치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애니메이션 외의 분야는 아무리 좋은 컨텐츠로 홈페이지를 꾸려놔도 사람들에게 내 홈페이지를 알리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홈페이지를 운영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포털 휘하의 블로그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블로그는 포털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검색에 의한 노출도가 급격히 상승하게 됩니다. 즉, 사람들이 포털 사이트에 뭔가를 검색하면 블로그의 글까지 같이 검색이 되면서 자신의 블로그로 방문자가 유입되는 것이죠.

게다가 블로그를 서비스하는 포털들은 블로그 메인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매번 우수 블로그를 선정하고, 또 블로그끼리 이웃을 맺는 등 이젠 더 이상 자료 위주의 주제가 아니어도 적절한 방문자를 확보하며 개인 공간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게임/애니메이션과 같이 자료성 테마는 여전히 개인 홈페이지 위주로 돌아갔지만 게임/애니메이션 외의 테마는 홈페이지보단 접근성이 좋은 블로그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주제를 테마로 하는 공간이 생겨나게 되었죠.

 

물론 개인이 블로그를 통해 애니/게임을 주제로 운영하는 곳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 때만해도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게임/애니메이션 커뮤니티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자료가 중요했고, 때문에 이러한 자료성 커뮤니티는 블로그보다는 개인 홈페이지에 선호가 쏠렸습니다. 블로그에다가 자료를 올릴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럴만한 용량이 주어지지 않음)

게다가 기본적으로 홈페이지는 블로그랑 성격이 좀 다릅니다. 홈페이지는 여러 방문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그 방문자들끼리 서로 교감하고 의사소통하는 광장 같은 곳이라면, 블로그는 홈페이지처럼 방문자들끼리의 교감이 아니라, 블로그 운영자인 나 방문자 사이의 1:1 교감을 나누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게임/애니메이션 커뮤니티는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교감이 중요한데, 홈페이지는 이것이 가능한 반면 블로그는 방문자들간의 교감이 아닌 운영자와 방문자 사이의 1:1 교감만 가능했다는 점에서도 사실 블로그는 애니/게임 커뮤니티를 대체할만한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즉, 블로그는 개인 홈페이지의 영역을 침범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 당시 게임/애니메이션같은 자료성 주제는 여전히 개인 홈페이지 중심으로, 그 외 텍스트/이미지 위주의 비자료성 주제들은 블로그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블로그를 개인 홈페이지의 용도를 떠나 오늘 날의 페이스북처럼 일상을 공유하는 용도로 쓰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습니다만, 블로그라는 툴은 사실 주제 친화적이지 소셜 친화적인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페이스북은 '자신의 지인'이 눈 닿기 쉬운 곳에 위치되어 있고 페이스북간 지인간의 이동과 연결이 손 쉽지만, 블로그는 아무리 이웃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각 블로그마다 독립적이고 폐쇄적인 면모가 있었기 때문에 소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용도로는 사실 적합하진 않았지요.

따라서 블로그의 등장은 개인 홈페이지를 몰락이 아닌, 개인 홈페이지와 함께 가는 서비스라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정작 개인 홈페이지를 무너뜨린 요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6. "카페"의 진화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들이 아둥바둥 사이트를 꾸려나가고 있던 와중에, 한국 웹 생태계에는 새로운 변화가 도래하게 됩니다.

각 포탈은 여지껏 제공해오던 카페 서비스의 질을 한껏 높이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게 되는데 그 선두주자는 다음 카페를 넘어서기 위해 부득부득 이를 갈았던 네이버 였습니다.

여태까지 포탈 서비스는 다음이 독보적이었습니다. 한메일과 다음카페라는 대표 서비스는 거의 고유명사로 굳어질 정도였죠.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는 반격을 가하기 위해 자료실 용량 무제한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앞세워 네이버 카페 서비스를 출시하게 됩니다.

사실 이때까지 네이버는 카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면 이상했지요. 다음 뿐 아니라 네띠앙, 프리챌 등등 온갖 포털에서 당연하다시피 카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왜 네이버에서는 카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자료실 무제한이라는 파격적 혜택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카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것이죠.

 

상술했듯이 카페 서비스는 웹 생태계 초창기부터 늘 있어 왔습니다. 다음 카페 뿐 아니라 프리챌, 세이클럽 등 여러 포털에서 너도나도 카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애니메이션 커뮤니티는 카페가 아닌 개인 홈페이지 위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카페의 경우 게임/애니메이션처럼 자료 위주의 커뮤니티를 다루기에 적절하진 않았습니다. 각 카페마다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이 점은 개인 홈페이지 역시 마찬가지이긴 하나, 양쪽 모두 용량에 허덕이는게 동일하다면 운영자들은 내 공간을 꾸미는 재미가 있는 홈페이지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카페 용량 무제한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지만 그 당시만해도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각 카페마다 허용 용량이 정해져 있었고 따라서 늘 용량에 허덕이며 지난 자료를 삭제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카페라는 서비스가 있었음에도 개인 홈페이지 열풍이 불었던 것입니다.

안 그래도 카페는 개인 홈페이지와 달리 디자인 틀이 고정되어 있어서 운영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공간을 꾸미는 재미가 거의 없는데, 더군다나 개인 홈페이지에 비해서 용량 면에서도 별다른 메리트가 없었으니 애니메이션 커뮤니티를 굳이 포털 휘하의 카페에 개설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애니/게임을 주제로 하는 카페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으므로 애니/게임을 주제로 하는 카페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개인 홈페이지에 비해 꾸미는 맛은 없다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개인 홈페이지보다 개설/유지/보수가 더 쉽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으므로 이런 장점에 끌린 사람은 카페를 통해 애니/게임 커뮤니티를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제법 인기를 끈 곳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신비로 애니피아같은 곳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신비로 애니피아같은 카페도 그 당시 카페들 중에서는 드물게도 '자료'를 많이 제공해주는 카페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망했지만 당시의 신비로는 카페 서비스에 많은 지원을 했던 것 같고, 그 중에서도 애니피아 카페에는 거의 편애에 가까운 엄청난 용량적 특혜를 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카페 서비스 초창기에는 게임/애니메이션과 같은 자료성 커뮤니티의 경우, 포털 휘하 카페보다는 개인 홈페이지를 더 선호했습니다.

물론 게임/애니메이션같이 자료가 중요한 화두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카페는 홈페이지보다 유용한 커뮤니티 수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포털 안에 카페를 만들면 포털 회원들이 해당 카페로 접근하기 쉽기 때문에 카페 입장에서는 높은 방문자를 확보할 수 있었지요. 때문에 카페 서비스 그 자체로는 매우 잘나가는 서비스였습니다.

이는 곧 바꿔 말하면, 당시 한국을 강타했던 홈페이지 열풍에 의해 생겨난 사이트들은 대부분 게임/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 외의 주제는 개인 홈페이지보다는 포털 휘하 카페가 더 유용했기 때문에)

몇몇 유명 포털 사이트밖에 없었던 척박한 초기 한국 웹 생태계에 수 많은 개인 홈페이지들이 생겨나면서 이로 인해 한국 웹 생태계가 풍부해 졌다고 말씀 드렸는데, 이때 한국 웹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든 그 수 많았던 홈페이지들의 상당수가 애니메이션 또는 게임을 주제로 하는 홈페이지였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게임/애니메이션은 비록 의도치는 않았지만 어쨌든 본의 아니게 한국 웹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멋진 역할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자료 때문에 용량이 중요한 게임/애니메이션 계열 홈페이지 운영자들은 무제한 자료실 용량을 제공하는 네이버 카페가 출범하자 귀가 솔깃해 졌습니다. 이젠 가족/친지까지 포털에 가입시켜 홈페이지 용량을 힘들게 끌어 모아 어렵게 사이트를 운영하는 고초를 면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물론 네이버 카페에서 제공하는 무제한 용량은 제 기억에 당시만해도 파일당 최대 용량 제한이 3~5MB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동영상을 제외한 그 외의 이미지/음악 같은 자료들은 이제 무제한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또한 동영상이라도 해도 근성을 발휘해 3~5MB 단위로 분할압축을 한다면 못 올릴 것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미 예전부터 늘 분할압축으로 잘게 쪼개진 자료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건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점이지요. 오히려 예전엔 잘게 쪼개진 분할압축 중 하나라도 짤리게 되면 여태껏 받은 것들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는 절망을 맛 봐야 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우려는 사라진 것입니다.

 

이처럼 네이버가 무제한 자료실 카페를 선보이자 다른 포털들도 경쟁하듯 카페 용량을 크게 올리거나 무제한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여태껏 개인 홈페이지의 영역에서 분투하던 게임/애니메이션 사이트 운영자들은 빠른 속도로 포털 휘하 카페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때 맞춰 피디박스(현 클럽박스의 전신)같은 웹하드 매체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용량 큰 동영상은 이런 곳에 별도로 올려두며 운영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개인 홈페이지 그 자체가 크게 위축되게 됩니다.

왜냐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당시 한국 개인 홈페이지들의 상당수는 게임/애니메이션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 게임/애니메이션 운영자들이 포털 휘하 카페로 옮겨 갔으므로 결국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 그 자체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지요.

아니메피스도 개인 홈페이지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7. 미니홈피의 등장

그러는 와중에 개인 홈페이지 열풍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킨 미니 홈피가 등장하게 됩니다.

미니 홈피는 사람들의 '소셜 욕구'를 제대로 건드린 획기적인 도구였습니다. 사람들은 과거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비록 잠시 뿐이었다고는 하나 소셜 욕구를 한번 맛 보았고, 이는 매우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강렬했던 욕구를 제대로 터뜨릴 수 있는 미니홈피라는 도구가 등장하자마자 크게 환호 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와 같은 가족 소개 홈페이지를 만들었지만 구태여 주소창에 주소를 입력하면서까지 남의 가족 소개를 보러 홈페이지에 찾아오는 방문객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블로그의 경우도 사정은 좀 낫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다루는 도구에 적합했으므로 이웃 시스템이 있었다고는 하나 각각의 공간이 서로 독립적이었던만큼 블로그 역시 사람들의 소셜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기는 어려웠습니다. 

반면 미니홈피는 일단 만들기도 매우 쉽지만 가장 특징적인 점은 자신의 지인을 아예 직접적으로 딱 지명해서 대놓고 관계를 형성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1촌)

때문에 미니홈피의 주인장은 예전과는 다르게 고정적인 방문객(1촌)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 홈페이지 시절은 전혀 모르는 제3자가 내 홈페이지에 올려 둔 나의 일상에 관심을 가질 리 없었지만, 미니홈피의 경우 방문객을 1촌으로 한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 방문객들은 내 일상에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나랑 전혀 관계없는 제3자가 아닌 나의 지인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므로 1촌들은 자신의 일상을 궁금해 했고, 이는 곧 내 미니홈피 방문으로 이어 졌습니다. 주인장 입장에서는 개인 홈페이지 시절엔 없었던 내 홈페이지 방문객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미니홈피는 개인 홈페이지처럼 제3자가 내 미니홈피에 방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신 소량이나마 자신의 지인(1촌)이라는 고정 방문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소량이지만, 고정이라는 점이 핵심이었지요.

게다가 제3자가 내 미니홈피에 방문하기 어렵다는 점은 사실 단점도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설령 방문할 수 있다 한들 어차피 방문할 리가 없을 테니까요. 방문자 입장에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일상에 무슨 관심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개념을 제대로 펼칠 수가 있게 됩니다. 만약 방문자가 누군지도 모를 우연히 들린 행자라면 그 사람이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가질 리 없습니다. 그러나 지인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지인이라면 자신의 일상에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들이므로, 그렇다면 드디어 자신의 하찮은(?) 일상이 홈페이지의 컨텐츠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개인 홈페이지가 처음 등장했던 시절,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대다수의 사람은 딱히 방문자를 끌어 모을만한 컨텐츠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 올릴 것이라고는 자신의 일상 밖에는 없었지요. 하지만 생판 모르는 방문자가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별다른 컨텐츠를 갖고 있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은 처음엔 호기심에 개인 홈페이지/블로그를 해보다가도 이내 방문자가 없기 때문에 금세 흥미를 잃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반면 개인 홈페이지 시절에는 사이트 컨텐츠로써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하찮은(?) 일상이 미니홈피에서는 당당한 사이트 컨텐츠로써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인들은 내 사생활에 관심이 많을 테니까요.

 

결국 가진 컨텐츠라곤 자기 일상 밖에 없었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드디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재미를 알게 됩니다. 예전에는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들만 느껴왔던 그 희열을 이제는 일반인들도 미니홈피를 통해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니홈피 주인장들이 도토리를 구입해가며 자신의 미니홈피를 꾸며대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나 쓸데없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들이 자신의 사이트를 이쁘게 꾸미는 그 기쁨과 똑같은 것이었으니까요.

물론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 입장에서는 미니홈피 주인장이 도토리로 할 수 있는 치장이라고 해 봤자 요상한 아바타, 조잡한 이미지같은 것들이 전부인지라 매우 수준 낮고 하찮다고 여겼지만, 그건 개인 홈페이지를 꾸려갈 수 있는 스킬을 가진 일부 운영자들한테나 해당되는 것이었고, 어려운 홈페이지 제작 기술을 모르는 일반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도토리를 통한 '조잡한 치장질' 수준으로도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들이 느꼈던 그 '내 공간 꾸며가는 희열'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인기가 치솟던 미니홈피 서비스는 결국 단순히 내 공간에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희열을 넘어 아예 사교의 한 수단으로까지 발전 했습니다. 친해지기 위해서,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미니홈피를 하는 수준까지 이르른 것이죠.

 

이 미니홈피 열풍은 무제한 자료실을 앞세운 카페의 등장 탓에 안그래도 침체를 겪고 있었던 개인 홈페이지의 명줄을 끊어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사실 개인 홈페이지는 초창기에나 잠깐 소셜 욕구 충족의 공간이었지 그 이후부터는 오랫동안 특정 주제를 테마로 삼아 방문객들이 서로 교감을 나누는 광장 같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소셜 욕구와는 큰 관계가 없었습니다. 즉, 개인 홈페이지와 미니 홈피는 애초부터 서로 겹치는 영역이 없는 별개의 서비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에 똑같이 홈페이지(홈피)라는 용어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둘은 필연적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교 결과는 이젠 일부만 운영하는 개인 홈페이지에 비해 대다수의 국민이 운영하는 미니홈피의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따라서 각 포털에서는 회원들에게 일정량의 홈페이지 용량을 제공하던 것을 철회하고 그 대신 미니홈피와 같은 서비스를 내놓게 됩니다. 사실 개인 홈페이지의 위축은 미니 홈피 때문이 아니라 무제한 자료실을 앞세운 카페 때문이었지만 사람들은 미니 홈피 때문에 개인 홈페이지가 위축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네이버에서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를 철회하던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어코 네이버마저 철회했구나 하며 탄식했던 순간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네요.

결국 포털 초창기부터 등장한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는 무제한 자료실을 앞세운 카페 서비스로 위축되다가 결국 미니 홈피 열풍을 결정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8. 페이스북의 등장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미니 홈피 열풍도 싸이월드 측의 소홀한 운영 때문에 사양길로 접어들고 그 자리는 페이스북이 대신하게 됩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홈페이지가 있었기 때문에 미니홈피도 페이스북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둘을 비교해보면 분명 차이가 보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페이스북은 미니홈피의 소셜적 장점은 그대로 가져온 채 미니홈피에서 '미니'를 빼버린 형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니홈피는 일단 화면 자체가 새창으로만 뜨는 데다가 별도의 독립적인 접속 주소조차 없습니다. (화면 소스를 파 보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지만 일반인들이 보통의 방법으로 알 수는 없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전 한창 미니홈피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과연 저걸 홈페이지라고 볼 수 있는가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명칭에 홈피가 들어간다고 하여 저걸 정말 홈페이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회의적이었죠.

반면 페이스북은 접속시 여느 사이트처럼 (새창이 아닌)평범하게 뜨는데다가 독립적인 접속 주소도 갖고 있는 등 소셜 기능은 그대로인 채 외양은 좀 더 홈페이지다워 졌습니다. 저는 페이스북 정도라면 홈페이지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레이아웃 역시도 미니홈피는 게시판 형식인 반면 페이스북은 블로그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일상을 공유하는 소셜적 측면에서는 후자 블로그 형식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은 이런 점에서도 여러 단계의 메뉴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내용을 볼 수 있는 등 편의성/접근성이 좋았습니다.

 

 

9. 커뮤니티의 현재, 그리고 미래

이처럼 미니홈피를 대신한 페이스북 열풍은 오늘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의 사생활에 큰 관심을 갖고, 또 자신 역시 남에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소셜 욕구가 있습니다.

따라서 개개인의 단위에서 페이스북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되거나,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페이스북을 대신한 무언가가 등장할지언정 소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매체는 언제나 존재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개개인의 단위를 넘어 집단의 영역에서는 포털 휘하 카페가 커뮤니티로써의 역할을 현재까지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리하면 과거 개인 홈페이지가 담당했던 역할은 오늘날 목적에 맞게 3가지로 분화 되었습니다.

1) 개인의 소셜 욕구를 담당하는 역할은 페이스북이 맡게 되었고,

특정 주제를 고찰하는 역할은 블로그와 포털 휘하 카페로 양분 되었습니다. 즉,

2) 특정 주제를 개인이 다루는 공간은 블로그가,

3) 특정 주제를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공간은 포털 휘하 카페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위 3가지 모두 최초 분명 개인 홈페이지로부터 출발한 것이지만,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용도에 맞게 위와 같이 3가지로 분화된 것인데요. 저 분화 과정을 조용히 지켜봐 온 제가 느끼는 기분은 정말이지 뭐라 형언하기 어렵네요.

그리고 그 최초의 출발선(개인 홈페이지)를 아직까지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아니메피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시대에 뒤처진 것일까요? 아니면 시대적 가치를 지켜온 것일까요?

 

 

10. 현재의 아니메피스

이러한 역사를 거치며 현재 개인 홈페이지는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남아 있는 것이라곤 일부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동인 작가들의 사이트와 아이돌 팬페이지, 그리고 웹사이트/홈페이지같은 웹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루는 사이트 뿐입니다. 

이제는 웃긴대학, 루리웹 등과 같이 대형 사이트로 진화한 일부를 제외하면 그 많던 홈페이지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살아 남았다는 저 일부의 대형 사이트도 사실상 상업 사이트로 변모했기 때문에 개인이 운영하는 오픈형 중소형 사이트는 사실상 전무해 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메피스는 이 파란만장했던 한국 웹 생태계의 급격한 변천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오늘날과 같이 중소형 개인 홈페이지가 대부분 사장되어 버린 현 상황에서 아니메피스가 홈페이지의 틀을 유지한 채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 개인 홈페이지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와 똑같습니다.

그 당시 개인 홈페이지는 네티즌들이 자료(대표적으로 동영상)를 구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에 끊임없는 방문 수요가 있어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니메피스 역시도 비록 자료 구하기 쉬워진 요즘 시대라고는 하나 그래도 여전히 애니 악보를 구할 수 있는 저명성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운영이 중단된 와중에도 근근히 유지가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합니다.

또한 그 당시 개인 홈페이지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인 홈페이지 용량 확보도 아니메피스는 유료 호스팅을 통해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형 포털 휘하 카페로의 편입 유혹을 강하게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형 포털 휘하 카페로 들어가면 지금보다 더 많은 방문객을 손 쉽게 유치할 수 있고 또한 홈페이지 유지 비용도 전혀 들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이트 유지/관리도 간편해 집니다. 과거에는 홈페이지 제작/유지/보수가 힘든 노고가 아닌 꾸미는 재미에 해당 됐으나, 시간적 여유를 낼 수 없는 지금에 있어서는 그저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홈페이지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웹프로그래밍 지식이 필요한데 전 사실 그런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술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면 매우 곤란해 집니다. 과거에는 어린 열정에 발품을 팔아가며 어떻게든 해결해 나갔다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때는 홈페이지 열풍이 있었기 때문에 기술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면 도움을 청할 곳이 많았습니다만 요즘엔 그렇지가 않더군요. (이제는 돈을 요구합니다;)

 

몇달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으며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그때 그 시절 과거에 대한 회상에 잠기곤 했습니다. 매번 짧은 인삿말로 끝맺던 1주년 인사를 이번엔 이토록이나 장황한 역사까지 곁들여 말씀 드린 이유에는 분명 응답하라 1988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중소형급 개인 홈페이지가 대부분 사장된 오늘날, 꿋꿋하게 개인 홈페이지의 틀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과연 시대에 뒤처진 처사인지 아니면 시대적 가치를 지키는 뜻 깊은 일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어려움 속에도 꿋꿋히 개인 홈페이지라는 틀을 유지해 나가고 싶다는 유쾌한 고집이 드는 이유에는, 그 시절을 상징하는 시대적 증거인 개인 홈페이지를 차마 나마저 없애버리기 싫은 것도 있겠고, 또한 포털에 구속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운영해 나가고 싶은 바램도 있겠습니다.

결국 이래저래 생각해 봐도 힘이 닿는 한 홈페이지의 틀은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길게 서술해 온 그 뜨거웠던 그 시절의 흔적이 묻어 있는 이 곳을 가급적 개인 홈페이지라는 원형 그대로 오랫동안 유지/보존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아니메피스의 전신이었던 우니의 최유기 세상(http://www.saiyuki.co.kr)이 아카이브 형태로나마 박제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다 이러한 맥락에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11. 앞으로의 아니메피스

위에서도 솔직히 고백한 사실입니다만, 저는 애니메이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주제에 정작 애니메이션을 거의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분명 아니메피스를 만들었을 당시만해도 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팬이었고 나름 즐겨 봤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물론 지금도 좋아하는 편이라고 답은 하겠지만, 그렇지만 아니메피스 운영을 잠정 중단했던 2008년 9월 이후로 접한 애니가 없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일단 사이트를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바쁘기 때문에 애니를 볼 시간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입니다. 게다가 지겨운 미소녀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요즘의 애니판을 보고 있노라면 그다지 애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보느냐 또는 드라마는 보느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닙니다. 전 원래 예전부터 드라마나 영화, 예능이나 코미디 프로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외적으로 응답하라 시리즈를 재밌게 보긴 했습니다. 예능은 라디오 스타, 그리고 응팔 배우들이 나오는 꽃청춘 아프리카 정도를 챙겨 보는 편이지만 그 외에는 딱히 챙겨 보는 프로도 없습니다. 군복무 시절 처음 접하고 재밌게 봤었던 국민예능 무한도전도 요즘에는 별 재미가 없어서 안 봅니다.

줄줄 써놓고 보니 참담하리만큼 서글픈 상황이네요. 저도 모르게 뉴스만 챙겨보던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실 악보로 만들법한 좋은 음악은 작품으로 접해야 그 진한 감동이 전해져 오는 법인데 애니/드라마를 막론하고 작품을 거의 접하지 못하고/않고 있으니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작품은 건너 뛰고 음악만 놓고 보면 어떨까요. 애니 음악은 최근 작품을 접해본 적이 없으니 결국 제가 한창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90년대 고전 명작 위주가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악보 제작 예정 리스트에 등록해 둔 애니 음악들은 대부분 90년대 명작 애니 OST 입니다.

하지만 아니메피스는 제가 작업한 악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돌아다니는 애니 악보를 한데 모아 제공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최신 작품의 악보들은 여전히 계속 다루게 될 전망입니다.

최근 응답하라 1988을 통해 80~90년대 옛날 대중가요 노래들에도 제법 관심이 가긴 합니다만 가요는 본 사이트 주제와 무관하므로 차치하겠습니다.

이 정도가 훗날 운영 일선에 복귀하게 되었을 때 어떤 방향으로 운영될 지에 대한 대략적인 밑그림이 되겠습니다.

 

응답하라 1988의 영향으로 문득 과거를 회고하게 되면서 15주년 기념 공지는 아니메피스가 달려온 과거를 추억해보며 여느 때보다 더 길고 특색있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회원 여러분 중에는 최근 새로 찾아오신 분들도 있겠고 오랫동안 함께해 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오랫동안 아니메피스와 함께해 온 회원님이라면 여태까지의 제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셨을까요? 서두에도 말씀 드렸지만 학창 시절 이곳을 알게 되어 현재 어엿한 직장인으로써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는 회원 여러분을 볼 때마다 저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다시한번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타깝지만 아직도 당장의 운영 복귀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언젠가 주변이 정리되고 삶의 여유를 찾게 되었을 때 운영 일선에 복귀하여 과거 그 좋았던 시절을 다시 그려볼까 합니다.

그러니 회원 여러분도 그때까지 아예 잊지는 마시고 간간히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찾아 주신다면, 15년간 그래왔듯 늘 있던 자리에서 변치 않는 모습으로 여러분을 맞이 하겠습니다.

2016년 한해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 공히 성취하는 뜻 깊은 한해가 되시길 간절히 바라 마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